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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7-15 0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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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퍼즐 위의 잠(9)



▲ 1회(6월 17일), 퍼즐 맞추기만 하면 됩니다.

▲ 2회(6월 21일), 아무 장식 없는 흰 벽에...

▲ 3회(6월 24일), 그녀는 상자 속 비닐을...

▲ 4회(6월 28일), 그녀는 옥상 한켠에 있는...

▲ 5회(7월 01일), 그녀는 방바닥에 커다란...

▲ 6회(7월 05일), 그녀가 검은 조각 하나를...

▲ 7회(7월 08일), 곰솥 뚜껑을 열고 국을 뜨는데...

▲ 8회(7월 12일), 그녀는 고흐의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메우고 있다.

▲ 9회(7월 15일), 하나, 두나를 시가에 맡길까 하다...

▲ 10회(7월 19일), 가정에서 〇〇〇 부업 하실 분 구합니다.

▲ 11회(7월 22일), 돈 받으러 간 그는 전화도 없고...

▲ 12회(7월 26일), 그녀는 지갑에 남아 있는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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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위의 잠(9), 하나, 두나를 시가에 맡길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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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두나를 시가에 맡길까 하다, 그녀는 아이들 모두 데리고 집을 나선다. 해가 설핏 기울려고 한다. 그녀는 세나를 업고 커다란 비닐봉지를 손에 들었다. 아이들 걸음걸이에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걷는다. 저어기, 조금만 가면 돼. 뭐, 먹고 싶어. 나중에 집에 갈 때 맛있는 거 사줄게. 엄마가 돈 벌었거든. 하나는 뭐? 그녀는 다정하게 묻는다. 하나는 아이스크림, 이라고 말한다. 애걔, 겨우 그거야? 두나는? 두나는 냉큼, 짜장면, 이라고 한다. 그러니 하나도, 탕수육, 탕수육, 이라고 성급하게 말한다. 그러자 세나가 시원찮은 발음으로 치킨, 하면서 대단한 의견을 말한 듯 끼어든다. 와, 엄마가 다 사줄게. 아이들 얼굴이 환해진다. 치킨이든, 탕수육이든, 그녀도 맛난 게 먹고 싶었다. 그녀의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내일은 근처 체육공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돗자리를 펴놓고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불안정하게 걸어가는 두나의 작은 엉덩이와 가는 다리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 덜컥 임신이 될 때마다, 세 아이 다, 지워버릴까, 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안 한 적이 없으니, 준비 없이 엄마가 된 탓이 크지만, 특히 두나한테 미안한 마음이 더 많았다. 지우려고 병원까지 갔다가…… 결과적으로 만만찮은 낙태비용이 두나를 살린 셈이다. 쓸데없는 기억은 삭제되어야 하는데 불쑥 비집고 나온다. 그녀는 끈적한 두나의 손을 잡으며 길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길가 담벼락엔 스티커나 구인 광고지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가난한 동네라 집에서 하는 부업거리에 대한 광고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림 그리기 부업, 이라는 좀 크게 휘갈긴 글자를 보자 그녀의 입가에 쓴웃음이 고인다. 언젠가 하나를 가졌을 때 카드의 빈 그림에 색칠하는 일을 했는데 단순한 일이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공들이지 않으면 예사로 선 밖으로 붓질이 번져나갔다.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장당 110원이었던가? 열심히 해서 가져갔더니 이건 색이 번졌네, 불량이네 해서 다 빼고 정작 손에 남는 건 없었다. 그래도 이 퍼즐 일은 몫이 크고, 정확히 끼워 맞추기만 하면 되니까 불량으로 트집 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컨테이너 철제 벽의 차가워 보이는 회색과 달리 블록 같은 구조물은 태양열을 받아 더 뜨겁게 느껴진다. 그녀는 사업장 안에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들어가지 않고 출입구 마당에서 아이들과 기다린다. 잠시 후 50대와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둘이 그녀와 똑같은 짐보따리를 들고 나온다. 청년이 나오자 그녀는 기웃거리며 안으로 들어간다. 전의 그 깐깐해 보이던 남자가 아이 업은 그녀를 기억한다는 듯 모호하게 입가에 미소를 띤다. 그녀 곁에 딸린 두 아이들을 보며 남자는 경멸의 빛을 더 얹으며 말한다. 자, 봅시다. 그녀는 비닐봉지에서 그림판을 꺼내 그의 책상 위에 내민다. 그는 살피더니 왜, 두 개밖에 없냐고 말한다. 그녀는 뜯지 않은 퍼즐박스를 내밀며 미안한 듯 두 개밖에 못했다고 말하면서, 두 개 값만 달라고 한다.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개 값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다. 그녀는 이해 못한 표정으로 두 개밖에 못했으니 두 개 값 팔만 원과 보증금 오만 원,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으니 가입비 이만 원을 돌려달라고 말한다. 남자는 무시하는 표정으로, 그러나 예견된 일이라는 듯 그녀를 훑어보며 이 아줌마, 농담도 잘하네, 하면서, 곁에서 네모 박스를 챙기던 파마머리 여자에게 니가, 이 아줌마 알아듣게 설명 좀 해줘라 해놓고는 책상 위 그녀가 해온 물건을 들고 창고 쪽으로 가버린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그녀는 아이들을 사무실 벽에 딸린 대기용 의자에 앉게 한다.


여자가 파일에서 종이를 꺼내 그녀에게 약정, 동의, 위약, 이라는 딱딱한 말들을 말벌처럼 쏘아대는데, 무슨 말인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그녀의 얼굴은 점점 벌게진다.



배이유 ·소설가 eyou11@naver.com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 퍼즐 위의 잠(7)

- http://newsbusan.com/news/view.php?idx=3479

▶ 관련기사 : [뉴스부산초대석] 배이유 소설가, '배이유의 이유 있는 소설'

- http://newsbusan.com/news/list.php?mcode=m333yu8b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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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야기를 담는 신문, 뉴스부산'은 지난 4월 총7회(4월8일~29일)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된「조도에는 새가 없다」에 이은 '배이유 작가'의 두 번째 연재작 「퍼즐 위의 잠」을 모두 12회로 나눠 게재합니다. 지난 2011년 중반의 나이로 <한국소설>에 등단한 배 작가는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상'을 받아 2015년 첫 소설집 ⌜퍼즐 위의 새⌟를 출간하였으며, 이 소설집으로 2016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녀는 또 2018년, ‘검은 붓꽃’이 '현진건문학상 추천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첫 소설집에서 그녀가 밝혔듯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문학과 자신에 대한 끈질긴 희망을 '변신'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고백은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이라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두 번째 소개작 「퍼즐 위의 잠」 또한 이전과 같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뉴스부산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성하의 계절을 앞둔 6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이유'라는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나를 만나보기를 권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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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진해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줄곧 부산에서 살았다. 시골 들판과 수리조합 물가, 낮은 산, 과수원. 그리고 유년의 동네 골목길에서 또래나 덜 자란 사촌들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뛰어놀았다. 지금은 징그럽게만 느껴질 양서류, 파충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가던 논둑길에서,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들이 내 눈높이로 낮게 내려와 심장에 박히던 기억. #2학년 때 초량동 구석진 허름한 만화방에서 경이로운 문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 몸과 언어가 일치하던 어린 시절 책의 세계에 깊이 매혹되었다. 이런 강렬한 기억들이 모여 저절로 문학을 편애하게 되었다. 결국 소설에의 탐닉이 지금의 나로 이끌었다. 크게 변동 사항이 없는 한 송정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패배로 거듭날 글쓰기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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