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8-11-02 22:57:14
기사수정

▶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 ⑪ 두부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는 시인의 시와 짧은 단상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쓰게 되는 지점, 또는 시를 써 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수상은 시를 감상하는데 색다른 묘미를 주리라 생각한다. 일상적 삶에서 건져 올리는 시적 성찰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만상의 자연과 사물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시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인의 글과 생각의 흐름에 따라 시가 먼저 또는 단상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단상은 한 두 줄로 짧을 수도 있고 길수도 있다. - 뉴스부산 강경호 기자 -




▲ Calligraphy KANG GYEONG-HO





  지금 식탁 위에는 막걸리 한 병과 두부 한 모가 놓여있다

  목욕하고 오는 길에 사 가지고 온 것이다 

  사우나에서 땀을 흘린 뒤이고 빈속이니 얼마나 맛날 것인가 

  조만간 식도를 타고 내려갈 그 짜릿한 순간을 생각하니 

  아- 하 생각만으로도 벌써 온몸이 저릿해온다. 막걸리가 넘치지 않게 

  병을 서서히 돌린 후 개봉박두, 그 직전의 막간을 즐기며 

  찬찬히 병뚜껑을 따다가 무심결에 두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바로 그 순간이다 

  입도 없고 눈도 없는 두부가 나를 딱 쳐다보면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금까지 길거리나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두부를 보고 지나치고, 또한 끼니마다 밥반찬으로 술안주로 얼마나 많은 두부를 먹었는가! 그때마다 그냥 두부거니, 콩으로 만들었으니 건강에 좋으려니 그 외는 어떠한 느낌도 없던 두부가 난생처음, 별안간 정색을 하고 독대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그것 참 신기하구나! 유심히 두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시 두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참으로 이유 없이 난데없이 


  그리하여 詩, 두부는 독대를 신청한 두부와 나, 둘의 

  1:1 담판의 내용이다. 두부쯤이야 하고 얕보고 시작했다가 점점 밀린 나머지 마지막 연에서 내 본색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으니 담판의 결과는 당연 두부 ‘승’이다.


  밥반찬, 술안주, 정서적 소품으로써의 두부를 사유思惟하고 철학哲學하는, 명상瞑想의 승부사로 승격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시이다. 최불암 씨가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tv프로 한국맛기행(강원도 초정두부)편에 인용되기도 했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러니까’로 시작하는 1연은 언제 읽어도 재미나고 맘에 든다. 음 –그리하여 제2 시집의 제목이 된 詩이다.





  두부




1.

 그러니까 상고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총인구수를 알고 싶다면 두부를 먹어본 사람의 수를 세면되리라



2. 

 여기 두부가 있다

무색무취에다 자의식이 없는 두부는 돼지비계에 붙고 김치에 붙고 쓸개와도 어울린다 어떤 맛도 주장하지 않는 두부는 모든 맛과 거리를 두고 있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다 두부는 그냥 두부일 뿐, 아마도 중용이란 낱말에 혀를 대어보면 십중팔구 두부맛이 나리라 네모였다가 네모가 아니다가 형이 으깨져 동그랑땡이 되어도 그대로 무아무상이다 반야심경을 푹 우려낸 물에 간수를 넣어 굳힌다면 아마 두부가 되리라



3.

 두부쯤이야

단숨에 짓뭉개버릴 수도, 심장 깊숙이 칼을 꽂을 수도, 나는 두부 앞에서 당당하다 젓가락으로 모서리 한 점을 건드려 본다 기다렸다는 듯 두부는 스스로 제 살점을 뭉툭 떼어 젓가락 쪽으로 옮겨 앉는다 칼로 잘라본다 칼이 닿자마자 두부는 온몸으로 칼을 받아들여 칼의 길이 되어버린다 큰 육모, 작은 육모, 조각이 난 두부 어디에서도 칼의 흔적, 칼의 상처를 느낄 수 없다 어느 칼잡이가 칼을 받아내는 솜씨가 이러할까 고수 중에 상고수다



4.

 온두부에다

 연두부

 연두부에다 순두부

 두부는 연하고 순하다 따듯하고 착하다 그래, 두부야, 그래서 두부야 그러니까 두부여 무엇이라고 이 두부놈아 아이구 두부님 어이구 두부시여 이제, 나의 화두는 두부이다







▶ 김영미 시인이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1998년 계간 시전문지『시와사상』,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 2004년 한국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수혜

. 2004년 제1시집 <비가 온다>발간 (출판사, 현대시 )

. 2011년 제2시집 <두부> 발간 (출판사, 시와 사상사)

.『시와사상』편집 동인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 현재는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


'나무 한그루'는 내가 즐겨 쓰는 아이디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자유의 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고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빗소리를 들으면 술 생각이 나고 무엇보다 빈속에 한 잔을 좋아한다. gangmul53@hanmail.net


뉴스부산=강경호 기자 newsbusancom@daum.net


0
기사수정
저작권자 ⓒ뉴스부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최신 기사
  1. 1 국세청, 미술품으로 숨기는 등 고액·상습체납자 재산 추적·징수
  2. 2 윤 대통령, 국민통합위원회 '23년 하반기 성과보고회 주재
  3. 3 초대석 = 우향 안정숙(芋鄕 安貞淑), '허기진 운동장'
  4. 4 APEC기후센터-바누아투 정부·지역사회, 기후 협력회의 개최
  5. 5 'BUSAN BUS' 2024 승무원 채용설명회, 5월 16일 개최
  6. 6 부산시, 18~39세 부산 청년 활동 마일리지 제도 올해 첫 시행
  7. 7 부산시-부산교육청, 다자녀 교육지원포인트 본격 추진
  8. 8 로또 1119회 = 1등 19명, 각 당첨금 1,396,028,764원
  9. 9 제29회 교원미술전 개최 (5.10.~30. 교문갤러리)
  10. 10 2024 부산패션마켓(5.10.~18)...의류·신발 등 부산브랜드 제품
  11. 11 부산시, 5월 13일부터 '마약류 피해노출 익명검사' 실시
  12. 12 '부산, 창조적 휴양을 만나다' ... 아트부산 2024 개최(5.9~12.)
  13. 13 尹 대통령, 독립문 영천시장 방문 '장바구니·외식 물가 점검'
  14. 14 대통령실, 윤 대통령 취임 2주년 특별 누리집 공개
  15. 15 케이(K)뷰티 인기 ... 가정용 미용기기 수출도 역대 최대
  16. 16 Holding Out for a Hero - Adam Lambert. 신나는 초급댄스
  17. 17 입양가족과 함께하는 '제19회 부산시 입양의 날 기념식' 개최
  18. 18 부산시, 올해부터 집단급식소 주기별 전수 점검
  19. 19 지역사회 연계 '자갈치시장 늘봄 체험프로그램' 운영
  20. 20 하윤수 교육감, 9일 부산고등학교 도서관 개관 축하
최근 1주일 많이 본 기사더보기
'부산, 창조적 휴양을 만나다' ... 아트부산 2024 개최(5.9~12.) 부산시, 5월 13일부터 '마약류 피해노출 익명검사' 실시 2024 부산패션마켓(5.10.~18)...의류·신발 등 부산브랜드 제품 제29회 교원미술전 개최 (5.10.~30. 교문갤러리)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google-site-verification: googleedc899da2de9315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