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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9-02 22: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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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한 뛰어난 예술가를 찾아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의 치열하고 빼어났던 창작의 유산이 지구촌 어디에선가 있음에도, '크리에티브'와 '작가정신'을 외면하고 교감하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같은 시대, 같은 작업을 공유한 '작가적 양심'은 그래서 더 빛이 난다. - 수영넷 Suyeong.net 강경호 기자 -




▲ 한국인 최초 1981년 `빠리 시립 따삐스리 아뜰리에 책임자`에 올라 1987년까지 7년간 근무했다. 사진은 농심호텔에서 포즈를 취한 이숙희 작가. 수영넷 Suyeong.net 강경호 기자





오늘부터 「수영넷 Suyeong.net」은 미처 우리가 알지 못한 뛰어난 예술가를 재조명하는 코너를 연다. 이 코너는 예술가에 대한 소개와 함께 예술가의 작품과 사유(思惟)가 담긴 글을 몇 회에 나누어 게재할 예정이다. 이 코너를 통해 재야에 흩어져 있는 훌륭한 예술가들이 혼신을 받쳐 일궈 온 작품세계가 소개되고, 평가받고, 상호 교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빈다.




그 첫 번째로 이숙희(73) 따삐스리 작가를 소개한다.



이 작가는 1944년 경남 양산 출신으로 1963년 경남여고와 1968년 한국외국어대학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3년 간 모교인 경남여고에서 불어교사로 재직하였다. 프랑스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1971년 도불한 작가는 1975년 빠리Ⅲ대학에서 연극과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이와는 별도로 1972년부터 본격적인 따삐스리 연구에 매달렸다. 1972년 프랑스 깡미술 대학에서 판화공부를 시작으로 1974년부터 1976년까지 3년간 빠리동양미술학교에서 서예와 동양화를 공부했다. 따삐스리를 위하여 수년에 걸쳐 판화, 서예, 동양화 연구에 전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따삐스리 공부에 전념했다.



이 기간 1978년과 1980년, 1981년에는 C.R.E.A.R.의 따삐스리 아뜰리에에서 정부장학생으로 수련하였으며, 세계적 거장 '삐에르 다껭'의 조교로도 일했다.



특히 1979년부터 1년간 프랑스 파리의 국립 고블렝(Gobelins) 따삐스리 아뜰리에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수련하는 기회를 가졌다. 10년 이상의 수련 과정을 거친 장인들만 작업한다는 이 곳은 프랑스 국가에서 관리하는 4백여 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1981년 드디어 그녀는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빠리의 한 시립 따삐스리 아뜰리에 책임자 자리에 올라, 1987년까지 7년간 근무했다. 귀국하기까지 그녀는 한국과 빠리를 오가며 활동했다.



따삐스리를 연구하고 그녀가 처음 작품을 선보인 것은 1978년 프랑스 엑러젤에 있는 아뜰리에에서 열린 단체전 ‘따삐스리전’이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983년 서울의 '선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이다. 이후 10년 간 한국과 빠리를 오가며 5번의 개인전과 귀국 전까지 격년제로 열리는 살롱데보쟈르 등 유수의 단체전에 40여 차례 출품해 왔다.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1983년 현대문학 소설 추천이 완료되었고, 1986년 빠리Ⅷ대학에서 조형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따삐스리에 대한 그녀의 작가정신은 투철했고, 그 화두는 ‘전통의 재창조’였다. 박사학위 심사 당일, 그녀는 그동안 작업한 따삐스리들을 가지고 가서 위원들 앞에 섰다. 논문 말미에 기록한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이 만들어내는 재창조를 직접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숙희 작가의 예술성은 크게 한국적인 것, 전통과 창조적 자세, 텍스타일 언어의 새로운 형태에 있다.



미술평론가로 유명한 일간 피가로지의 잔닌느 바로느는 “이숙희는 한국 정통적인 것과 현대 따삐스리 기법을 융화시킨 독창적 작품”으로 “작품들이 가진 다양성의 근저는 그녀의 조국 문화”라고 평했다.(1987).



텍스타일Textile・아트Art 잡지 발행인이기도 한 미셀 또마 빠리Ⅶ대학 교수는 “이숙희의 따삐스리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 화합하면서 총괄하는 자리”라면서 역사적 고찰을 실과 기호의 일상적 실천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창조적 자세를 “이숙희는 자기 나라가 몇 가지 전통적인 직조의 과거를 재확인하고, 그것을 부활시킬 열쇠를 찾아내었다”고 얘기했다.(1987)



세계적인 따삐스리 작가 삐에르 다껭은 “작품에 등장하는 동양문자는 단순히 모티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반향과 화합하는 것으로 마띠에르(Matiere)와 더불어 언어적 예술로서의 균등성과 텍스타일언어의 새로운 형태”라고 표현했다.(1987)



귀국 후 경성대에 잠시 출강하였고, 국제신문 논설위원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수영넷 고문으로 있다.



그녀가 혼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일궈낸 따삐스리는 우리나라 따삐스리 미술 역사의 일부로 또는 지금도 따삐스리 공부를 위하여 프랑스 등 따삐스리 본 고장에서 공부하는 예술가와 연구자에게 좋은 이정표가 되리라 확신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바란다.



강경호 기자 suyeong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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