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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6-28 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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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수영넷'은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를 소개한다.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는 시인의 시와 짧은 단상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쓰게 되는 지점, 또는 시를 써 나가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수상은 시를 감상하는데 색다른 묘미를 주리라 생각한다. 일상적 삶에서 건져 올리는 시적 성찰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만상의 자연과 사물들이 어떻게 결합하여 시의 몸 안으로 스며드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시인의 글과 생각의 흐름에 따라 시가 먼저 또는 단상이 먼저 나올 수도 있다. 단상은 한 두 줄로 짧을 수도 있고 아래 <민들레 시론>처럼 길수도 있다. - 수영넷 강경호 기자 -





김영미 시인의 나무 한그루


백양산 바로 아래에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있다. 차를 타려면 10분 정도 비탈길을 내려가야 한다. 개금 역사까지 여러 개의 길이 있지만 내가 애용하는 길은 골목길이다. 골목 입구까지는 노란 민들레가 피어있는 풀밭길이다. 처음엔 남의 집 마당으로 들어선 줄 알고 멈칫 섰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가면 꽉 차버리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현관이 대문인 집들이 조르르 마주보고 있었다. 속옷, 바지 등 널린 빨래가 지나가는 내 얼굴을 쳤다. 그 뒤부터 이 길을 지날 때면 아파트에 사는 내가 미안해져서 언제나 최대한 자세를 낮추어 걸었다. 열린 현관문으로 방안이 보일 때가 있다. 오목조목 살림살이들이 정리된 선반을 보면 정겹기도 해서 그나마 살짝 안도의 심정이 들곤 했다. 이 사람들이 이 골목을 벗어나기란 어려울 것이다. 가난이 대물림 될 거라는 생각과 함께 신문이나 티브이에서 보도된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상념이 되어 나를 몰고 간다. 지금 내가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 등을 시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다.

그리고 일어서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불투명한 미래, 희망스럽지 않은 내일이지만 포기하지 말고 일어서야한다고. 순간, 화답이라도 하듯 선명한 이미지 하나가 다가온다. 방금 지나온 풀섶에 피어있던 노란 민들레꽃.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존재 그 자체이던. 그렇다,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존재, 길가 풀섶에 노란 민들레가 있다. 그 민들레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 그 민들레를 붙잡고 시를 쓰려는 시인이 있다.




민들레 시론


詩論은 없다

그러나 길가 노란 민들레는 있다

중앙청사로 가는 대로는 모르지만

바싹 코앞을 막아서는 막다른 골목길, 그 모퉁이의

벽화를 알고 있다 현관이 대문인 집들

그 앞 플라스틱 고무통 속에 감금된 사철나무를 알고 있다

복개중인 하천에 떨어지는 햇빛을 알고 있고

오월 홍방울새 미끄러지던

풀잎건반의 자진모리를 목격한 적이 있다

記法은 없다

전략을 굴릴 승용차도

대안이 얻어 타고 갈 트럭도 없다

과속방지턱에 걸리면 다시 대책이 없어지고 마는

고물자전거 한 대가 서 있을 뿐

사상이나 철학은 없지만

왜 꽃이 아니고 풀인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고

장미 가시에 맺힌 열 개의 핏방울에

마음을 베인 적이 있다

경제적 수치에 관한 정보는 없지만 빗방울 소리를 염주로 꿰어

궤짝을 쌓은 일은 있고

사람에게서 나는 강물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나침반은 없지만 비정규직에 대해 알고 있고

종착역까지 몇 개의 역사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들숨과 날숨 그 전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지도는 한눈에 다 볼 수 있지만

한 번에 다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 시집 <비가 온다>에서 -




김영미 시인이 보내온 자기 자기소개

. 1998년 계간 시전문지시와사상,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 2004년 한국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수혜

. 2004년 제1시집 <비가 온다> 발간 (출판사, 현대시 )

. 2011년 제2시집 <두부> 발간 (출판사, 시와 사상사)

.시와사상편집 동인 및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 현재는 부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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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는 내가 즐겨 쓰는 아이디다.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자유의 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하고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빗소리를 들으면 술 생각이 나고 무엇보다 빈속에 한 잔을 좋아한다. 개가 싫다, 주위에 개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풀, 나무, , 구름, 안개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나는 단연코 사랑지상주의자다.



수영넷 = 강경호 기자 suyeong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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