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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06-09 14: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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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는 친구에 목말라 하지 않는 것 같다. 식물, 동물, 사람은 물론 미술조차 친구가 있어야 건전하게 성장한다. 소나무도 무리를 이루어야 쓸모 넓은 목재가 된다. 외로운 소나무는 곧게 자라지도 않고 높게 자라지도 않는다. 동물도 무리를 떠나면 위험에 빠진다. 서예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나 지금까지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을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아닐까. 주위와 연결하고 무리를 이루어야 더불어 풍요롭게 됨에도 혼자 고고함을 즐겼던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서예의 친구는 누구일까? 아마도, 시(詩)일 것이다. 시의 어떤 점에서 서예와 닮았는지 생각해 보고, 다른 것과의 연결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전 호(206호)에서 언급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의 균형을 실천하는 것이며 또한 서예의 확장 수단이라 할 것이다.


▲ 《그림 1》 강경호, 상황, 2022, 디지털 아트, 창조는 본질에 대한 자각과 무의식의 감수성이 빚어내는 자기 정체성이다. 【서예는 미술이다. 미술은 자유롭고 서예도 자유롭다.】


☛ 시를 모르는 사람 없겠지만 ‘시의 정의’를 말하라 하면 망설일 것이다. 탈포스트모더니즘(post-postmodernism)이라 하는 현대에 정의(定義)를 묻는 것 자체가 의미 없으나 시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좋은 수단이다,


명사(名士)들의 정의를 보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 ~ 1849, 시인, 미국 최초의 전업작가)는 ‘시란 미(美)의 운율적인 창조’라 하였는데, 고상하고 명료한 답으로 생각되나 뭔가 구름 잡는 느낌이다. 폴 발레리(Ambroise Paul Toussaint Jules Valéry, 1871 ~ 1945, 시인, 프랑스)는 ‘시는 절규·눈물·애무·키스·탄식 등을 알게 모르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 물체가 그 외견상의 생명력이나 어떤 의지를 나타내고자 하는 그런 것, 또는 그런 것을 감성적 언어로 표현하거나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이다.’라 정의하였는데 이는 전자보다 좀 더 알기 쉬운 표현이다. 그러나 역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상식적 수준에서, 시는 일정한 운율(metre)과 압운(rhyme)이 있는 운문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서예와 글쓰기는 어떻게 다를까? 발레리가 설명하는 시와 산문과의 관계와 비슷하다 할 것이다. 발레니는 시와 산문과의 차이를 재미있게 표현했는데 공감이 간다. 전자를 무용에, 후자를 보행에 비유했다. 산문은 보행과 마찬가지로 어떤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나, 시는 무용과 마찬가지로 행위의 목표가 있기는 하나 그 행위 자체를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즉 시는 무용과 같이 하나의 미적 황홀함이 행위의 목적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서예와 글쓰기에 적용하면 서예는 시이고 무용이며 글쓰기는 산문이고 보행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이렇게 서예, 글쓰기, 시, 산문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글쓰기인 산문에 사용되는 언어는 의미기호로서의 언어, 즉 의미전달을 우선으로 하는 실용적인 언어이다. 그러나 서예나 시에 사용되는 언어는 감상자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 감성적 느낌을 주는 언어, 혹은 그런 표현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물론 시나 서예의 언어가 반드시 의미전달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시적 언어의 본질이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순수시나 서예의 개념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시나 서예의 가치는 그 글의 내용에 의해 전달된 사실이나 가치와는 다른 개념의 정신 활동이라 하겠다. 이점에서 서예와 시는 묘한 맛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시의 창작도 서예의 창작에 연결할 수 있으니 서예의 절친은 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 《그림 2》 개념 서예, 【서예는 핸드폰이다. 서예도 핸드폰도 문자를 쓰고 전달하며 연결한다.】


☛ 창작은 다른 것과의 연결이고 융합이다. 서예는 내용과 조형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인데, 내용은 문장의 의미이고 조형은 문장을 이루는 문자의 조화이며 분위기라 할 것이다.


서예 작품에 사용하는 문구는 주로 시이고, 문구를 구성하는 문자의 조형은 음악적 요소를 숭상한다. 달리 말해 서예와 시는 다 같이 문구를 사용하나 서예는 문구를 구성하는 문자의 조형과 운율을, 시는 문구의 내용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시의 형식은 음악적 요소가 강하며, 서예도 이를 공유하고자 하는 것에 닮은 점이 많다. 그래서 시의 묘미가 그대로 서예로 전이된다 하겠는데, 시의 묘한 맛은 내용보다 형식에 있고, 형식은 메타포(은유)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내 마음은 갈대.’ 와 같은 은유의 유무가 시의 맛을 좌우한다. 어떻게 마음이 갈대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뜻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과 갈대의 성질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내 마음과 갈대를 연결하며 상상의 재미를 확장하고, 이것이 맛으로 연결된다.


은유는 시, 소설, 미술뿐만 아니라 공산품에 활용될 때 더욱 가치를 발휘한다. 역설적 예를 들면, 「홈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발전은 은유의 산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즉, ‘전화기는 카메라이다’라는 엉뚱한 아이디어(은유)에서 카메라 기능이 더해졌고, ‘전화기는 컴퓨터이다’에서 각종 앱이 도입된 것이 아닐까! 전화기로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영화를 볼 수 있는가? 아무런 상관 없을 것 같은 서로 다른 2개의 연결, ‘전화기는 카메라이다. 전화기는 TV이다. 전화기는 시계이다.’와 같은 은유가 실현된 것이 스마트폰이 아니겠는가!


나와 상관없다고, 나와 다르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의 연결을 통해 더 강력한 내가 만들어짐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학자의 이성과 미술가의 감성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런 이질적인 것이 연결될 때 남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서예도 이러한 연결을 생각하면 시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이 서예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이들을 메타포로 연결하고 융합하면 새로운 서예, 남과 다른 서예의 길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각은 조각이다’로 연결하면 기존의 서각 재료와 기법에서 자유롭게 되며, 다양한 형태의 서각 작품이 가능할 것이다. 사실, 2022년 부산 국제화랑 아트페어에서 ‘훈민정음’을 돌출, 양각으로 디자인한 10호 정도 작품이 400만 원에 팔린 것을 보았다. 재료는 플라스틱이며 주조기법을 사용한 것 같았고, 기존의 서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더욱 엉뚱하게는 ‘서예는 반도체이다.’로 은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도체는 시계에서부터 아파트, 우주개발에 이르기까지 전기에너지가 흐르는 곳이라면 반도체는 필수이다. 언어도 그렇다. 사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는 언어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렇게 연결을 확장하면 개념 서예도 가능할 것이다.


▲ 《그림 3》 개념 서예. 【서예는 컴퓨터 칩이다. 서예도 컴퓨터도 사용자 의지대로 문자를 그릴 수 있다.】


☛ 이상과 같이 서예는 많은 부분 시와 연관되어 있고 또 배울 점도 많다. 사실, 서예와 시는 둘이 아니었음에도 오늘의 서예는 시구의 내용만 인용할 뿐 시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시와 서예에 능한 사람이 점차 줄어들면서 서예가와 시인이 남남이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남과 같은 것을 하면 편안함을 느끼고, 남과 달리 생각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서예가 외롭게 된 것은 아닐까?


동질의 변형보다 이질 간의 융합과 연결이 훨씬 더 창의적이다.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는 생각의 차이가 큰 것과의 융합에서 얻었다. 서예도 순수 서예에서 새로움을 얻고자 할 것이 아니라 서예와 상관없는 공학, 산업현장 등에서 더 좋은 숨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스마트폰의 역설처럼 우선 은유로 연결해 놓고 융합할 수 있을 것이다.


약동의 계절 5월, 여기저기서 서화전이 열리고 있다. 세계는 끝없이 변하고 있는데 서화전은 언제나 대동이고 유아독존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변화가 능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다. 서예는 친구에 목말라 해야 하고 지금까지의 ‘잘 썼다, 못 썼다’에서 벗어나야 하며, 은유는 하나의 좋은 창작 기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담 오후규 (서화비평가)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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